생각을비우는곳

Step2

이불킥대장 2026. 4. 14. 11:23
반응형


"여튼 한 번 더 춤춘다는 거 니가 약속했다?"
 




권투와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였다.
 
땀 흘리며 링을 돌던 20대의 나는 어느새 나이와 체력을 먼저 따지고,
근육통보다 내일의 출근을 더 걱정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글러브 결제 내역을 보며, 오랜 시간 나를 잊지 않으신 관장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떠난 뒤에도 체육관 한구석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던 내 줄넘기와 권투화.
내가 예전에 쓰던 글러브를 덜컥 주문하신 관장님의 굳건한 믿음.
 
돈도 없으신 양반이 내가 사면 될 것을.. 또 사모님한테 혼나시겠구만..
헛웃음과 함께 먹먹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그 긴 시간 체육관에서 주인을 기다린 게 내 장비들만은 아니었나 보다.
운동을 멈추고 아쉬워하던 내가 한 번쯤은 다시 스텝을 밟아보기를,
관장님은 내심 줄곧 바라고 계셨으면서도 차마 먼저 말씀을 꺼내지 못하셨던 것 같다.
 
다시 한번 권투화 끈을 묶어보기로 했다.
이번은 예전의 나로 똑같이 돌아가려는 게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가보는 거다.
넘어졌던 기억, 주저했던 시간, 그리고 다시 해보겠다는 지금의 마음까지 모두 안고 가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다.
 
처음 링에 올랐을 때가 멋모르고 뛰어든 열정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다시 해보겠다는 용기에 가깝다.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번째라고 해서 꼭 성공한다거나 길이 더 쉬운 것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그것만으로도 이번 재도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스텝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을 것이고, 글러브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어깨를 누를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 속에서 나는, 기꺼이 나만의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2014년

반응형

'생각을비우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멍이의 밀당  (0) 2026.05.30
Mon petit Chou-Fleur  (0) 2026.04.18
멍이가 달라졌어요  (0) 2026.04.01
반지하 탈출 D-2년,  (0) 2026.03.24
멍이랑 봄나들이 그리고 흉통에 대하여  (0) 2026.03.22